저희는 어제 2018년도 첫 주일을 언약갱신예배를 드리며, 하나님 내시는 길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백성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은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시간이 없도록 하시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여전히 물속에 꼬르륵 잠기는 어려움의 시간이 있을 것이고 뜨거운 불을 통과하는 시련의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때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물이 불을 없도록 하시겠다가 아니라, 물을 건널 때에 함께 하시고 불을 통과할 때에 함께 하시겠다는 동행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물과 불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일하실 때,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실 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데,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다. 선포하는 말씀을 함께 살펴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비유할 때, 산을 오르는 것으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산 정상을, 인생을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 정복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저는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산은 이미 정상까지 올라가지 루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출발지점부터 정상까지 거리가 얼마이고, 소유시간은 얼마가 걸리며, 어느 지점에서 휴식을 취하면 되는지 자세하게 안내해 줍니다. 그래서 여러개의 루터 가운데 하나를 정한 후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열심히 걸으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등산입니다.
여러분, 그런데요. 우리의 인생이 정말 산을 오르는 것처럼,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 준비한 대로, 그대로 진행이 됩니까? 만약 우리의 삶이 계획한 대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인생은, 정해진 코스를 오르는 산행이 아니라, 수시로 변화하는 광야와 사막을 걷는 것이 더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와 사막은 잘 아시는대로, 길이 없는 곳입니다. 세찬 바람이 한번 몰아치면, 모래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는 곳이기에,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이죠. 수시로 지형이 바뀌기에 지도가 소용없는 장소입니다. 또한, 광야와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에, 물을 구할 수 없는 곳이 광야와 사막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길을 알 수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고, 물을 구할 수 없는 뜨거운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그 광야의 길을 통과하게 하시고, 언약백성들로 하여금, 불 같은 사막을 통과하며, 그 강물을 마시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는 광야와 사막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등장을 합니다. 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가, 광야와 사막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메마르고, 척박하고, 불확실하고, 길을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에게 외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히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로 평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제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을 강을 내실 것이니, 너희도 그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고, 그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를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에 동역자로, 길을 내시고 강을 만드시는 일에 파트너로, 우리를 부르시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필요한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제 말씀을 통하여서, 물가운데 불가운데 내시는 하나님의 길을 어떤 길인가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순례자인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 필요한 것은가, 함께 생각하며, 하나님의 길 위에 우리의 발걸음을 세우는 새벽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오늘 4절 말씀이,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출발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절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당시 고대 중동의 길들은, 대부분 좁고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어딜 한번 행차를 하게 되면, 먼저 선발대를 보내어, 왕이 온다는 것을 아리고, 지역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왕이 지나갈 길을 보수하고 준비했던 것입니다. 움푹 파인 골짜기 같은 곳은 메우고, 툭 튀어나온 산들은 깍아내고, 울퉁불퉁한 곳은 평탄하게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2018년 동안, 우리도 하나님께서 내신 길을 우리가 가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이와 같은 정리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3절에 나오는 지형을 설명하는 표현들을,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령으로 생각해 보았는데요. 3절에 골짜기, 산, 언덕, 평지 등이 우리의 영혼이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본문은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골짜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생겨나는 열등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속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습성이 있고요, 나에게 없는 것을 더욱 크게 보는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벌을 비교하고, 재산을 비교하고, 외모를 비교하고, 지위를 비교해서, 없는 것이 집중하다 보면, 심각한 열등감의 골짜기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명의 정탐꾼을 보십시오. 그들은 2백만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정탐꾼으로 뽑힐 정도로, 아마 체격도 좋고, 리더쉽도 있고, 인정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압도적 다수인 열명의 정탐꾼은, 아낙 자손을 보고 돌아와서 ‘그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그들에 비하며 메뚜기와 같다” 메뚜기 컴플렉스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자, 낮은 자존감이 밀려왔고, 메뚜기로 전락해 벌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최후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내시는 약속의 땅을 향한 길을 보지 못하고, 메뚜기의 마인드를 가지고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는 씁쓸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도, 비교의식으로 인한, 열등감의 꼴짜기가 있을 때, 하나님의 내시는 길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실 때, 메뚜기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로얄페밀리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메뚜기와 같은 열등감에 사로 잡혀, 골짜기에서 허우적 저리다가, 일년을 끝내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로얄페밀리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자존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가시겠습니까?
그 다음으로 3절을 보시면,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라고 말합니다. 골짜기처럼 깊게 파인 것이 우리의 낮은 자존감이라면, 산과 언덕 처럼 높이 솟아 오른 것은 우리에서 무엇일까요? 우리는 교만의 언덕을 깍아야 하나님의 내시는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잠언 16장,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또한, 잠언 6장에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예닐곱가지 있다고 말하는데요. 이 목록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만한 눈을 가장 싫어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가고자 할 때, 교만의 산과 언덕이 있으면, 우리의 발이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등감의 골짜기를 매웠다면, 교만의 언덕을 깍아내며, 출발선에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교만한 바리새인이 기도하는 모습과 겸손한 세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비교하면서, 말씀하기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영적인 시소와 같아서, 마음의 높아서 교만하면, 낮은 자리로 쫓겨날 것이고, 반대로 낮은 자리에 마음을 두면, 높은 자리에 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역전의 법칙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겸손에 대해 ‘위대함으로의 하강’이라는 멋진 표현을 썼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교만의 언덕을 깍아내시고, 낮아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길에 서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보면, 3절 뒷부분에,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울퉁불퉁한 길을 고르게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서 여러가지 상처들로 인한 울퉁불퉁함이 존재합니다. 여기저기 아물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그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교우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얼마나 많습니까?
냉소적이고, 부정적이고, 예민하고, 우울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욕심부리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은, 모두 울퉁불퉁한 우리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오래 달리게 되면, 멀미가 나고, 쉽게 피곤함을 느끼고, 달라던 차도 금방 고장나고 말 것입니다. 상처난 마음으로 고르게 하고, 평탄하게 할 때,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결실하는 새로운 마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시는 광야의 길과, 사막을 강을 달려가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2018년을 시작하며, 골짜기 같은 열등감은 주님이 주시는 자좀감으로 채워지고, 높아 있는 교만의 언덕은, 토기장이 되시는 주님의 손길로 깍여지고,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마음의 상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듬어짐으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한해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