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Shore ArumDawn Church | 매듭짓기 (송년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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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짓기 (송년주일설교)

2017년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한해를 시작하는첫날이 예배하는 주일이었는데요. 일년의 제일 마지막날인 12월 31일도 역시 예배하는 주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해의 출발을 예배로 시작했고 일년의 마지막도 예배로 문을 닫는 의미있는 해입니다.
우리 함께 예배의 자리를 지켜오신 옆에 계신 분들을 격려하며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일년이었습니다>
‘매난국죽’ 사군자 가운데 겨울을 상징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잎을 유지하기에 지조와 절개를 의미하는 대나무가 겨울을 대표해는 나무입니다.  대나무의 모습은 보시면 줄기가 그렇게 굵지 않고 호리호리한 모습이며 그 속은 텅빈 상태로 뻗어 있습니다.  또한 대나무의 밑동을 파보면 다른 나무에 비해 깊이있게 뿌리를 내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대나무는 거센 날씨와 비바람에 쉽게 꺽일 것 같지만, 여러분, 실제로 어떻습니까? 겉모습은 연약해 보이지만 왠만한 바람과 폭우에도 끄떡없이부러지지 않는 것이 대나무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줄기가 굵지 않은 대나무가 강한 이유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듭을 지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속은 텅 비어 있을지라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생기는 매듭이 매서운 환경속에서도 대나무를 강하게 만드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대나무가 매듭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에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대나무와 같은 매듭짓기가 반드시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거센 바람과 폭우같은 환경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강함과 견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나무와 같은 매듭짓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 주일은 시기적으로 매듭짓기가 이루어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2017년의 제일 마지막 지점인 12월 31일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 매듭짓기를 하게 될 때 지나온 일년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2018년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일년의 마지막 날을 글을 쓰는 것에 비유해 본다면 아마도 오늘은 모든 글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문장부호를 찍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2017년의 마지막 문장에 어떤 문장부호를 찍으며 매듭짓기를 하시겠습니까?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우리 모두의 문장 끝에 네가지의 문장부호를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주보 안쪽에 보시면 4가지 문장부호를 안내해 드렸는데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들과 함께 지난 일년의 삶을 마무리하며 우리 가정에 맺힌 열매의 마침표는 무엇인지? 감사의 느낌표는 어떤 것인가? 바라봄의 쉼표는 무엇이고? 그리고 소망의 물음표는 무엇일까?  나눠 보시며 일년의 삶을 마무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인 신명기 1장의 말씀은 매듭짓기를 하며 우리가 표시하는 네가지 문장부호를 그대로 담고 있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이끌었던 모세가 고백하는 내용으로 모세의 입을 통해 증거되는 말씀들을 묵상해 보면 마침표와 느낌표, 그리고 쉼표와 물음표가 그대로 담고 있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모세가 고백하는 매듭짓기의 내용은 무엇인가 살펴보도자 합니다.
먼저 본문의 31절을 통해 2017년을 마무리하는 열매의 마침표와 감사의 느낌표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은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걸어온 2017년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한 단어로 요약해 본다면 어떤 말로 정리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컴퓨터 프로그램 가운데 알집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알집의 용도는 용량이 큰 데이터나 파일을 압축해서 작은 크기의 파일로 만드는 프로그램입니다. 여러분의 2017년 일년의 삶을, 365일의 날들을, 8,760의 시간과 순간들을, 알집이라는 프로그램에 넣고 압축하고 압축하고 또 압축하면 어떤 단어가 남을것 같습니까?
신명기 1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모세가 광야로 나오고 일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지금까지 걸어왔던 일년동안의 광야생활을 회고하고 돌아보며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걸어왔던 광야의 삶을 어떻게 회고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마치 자기의 아들을 안은 것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으사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요. 얼마나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돌던지요.
모세는 걸어왔던 광야의 삶을 돌아보며 지금까지의 길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광야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안아주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년의 광야생활을 알집이라는 프로그램에 넣고 압축하고 또 압축하면 막지막으로 남는 것은 안아주심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세가 말하는 안아주심의 고백이 일년의 삶을 매듭짓기하는 우리 모두의 입술에 있는 동일한 고백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그런데요. 다음절인 3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를 묶어 놓은 말씀입니다. 모세가 백성들 앞에서 설교하기를 “여러분! 우리가 걸어왔던 일년 동안의 광야는 힘들고 험한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심으로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설교하게 되자 백성들이 아멘! 하면서 안아주심에 대해 동의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안아주심의 고백은 과장된 소리이고 거짓말이라고 말하며 인정하지 않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사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했던 일년의 삶은 안락하고 편안하고 좋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광야의 삶이었던 것이죠. 그들은 마실 물을 구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겨우 물을 구했는데 이번에는 쓴물이라서 마실 수 없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먹을 음식이 떨어져서 짐승들이 픽픽 쓰리지고 백성들이 이성을 잃었던 적도 있었고 애굽의 군대가 추격하고 아말렉의 군대가 쳐들어 온 때도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그들은 며칠에 한번씩 천막을 쳤다 걷었다 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여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식단을 매우 단조로워서 만나로 만든 음식이 전부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이 경험한 광야생활은 고달픈 날들이었죠. 모두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분쟁이 그치질 않았고 늘 불안하고 지루하고 힘들고 짜증스러운 광야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광야생활이 하나님 품에 안겨서 걸어가는 삶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모두 똑같은 광야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했습니다. 어쩌고 보면 모세는 백성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온 시간이었죠. 8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 길이 없는 광야에서 수백만명의 생사를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의 위치는 피를 말리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구 모세에게는 다른 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 여정을 고난의 시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걷는 은혜의 통로로 볼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숨막히는 환경을 쳐다보며 절망했지만 모세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래에 있는 것 눈앞의 현실을 보느라 안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고 말았지만 모세는 위에 있는 것을 주목하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의지하게 될때 이스라엘 공동체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목격한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2017년 광야생활을 돌아보시면서 어떻게 고백하시겠습니까?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안아주심으로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고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못하고 내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프로그램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우리 가정에 있는 네가지 문장부호가 무엇이 있는가 생각해 보시고, 그 다음에 지난 성탄절 전에 방송되었던 KBS스페셜 가운데 <교회오빠>편을 꼭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영상은 30대 중후반의 젋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핸드폰 회사의 연구원이었고, 아내는 피아노를 전공한 중학교 음악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부는 결혼한지 3년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이 있는 동안 남편이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그만, 대장암 4기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이 가정에 쓰나미같은 고난이 밀려오기 시작하는데요. 제일 먼저, 건강했던 아들이 암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이 남편의 어머니가,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묵숨을 끓게 됩니다.
이후 힘들게 대장암 수술을 받고 6차 항암치료까지 마쳤을 때에 이번에는 아내가 몸에 이상을 느껴서 병원을 찾게 되었구 검사 결과 아내가 혈액암 4기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제는 아내가 암과 투병하게 되었고 겨우 몸을 추수린 남편은 보호자가 되어 아내의 고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항암치료를 힘겹게 이겨내며 겨우겨우 아내가 회복될 무렵 다시 이번에는 남편의 암이 재발하게 되었고, 심각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절망하고 포기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젋은 부부는 특히 교회아빠인 남편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말씀안에서 기도함으로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감사함으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영상 중간에 교회오빠인 남편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쓰나미 같은 고난이 일년동안 자신의 가정에 몰아닥쳤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년의 시간속에 정말 힘든 사건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가정을 품에 안으시고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안아주심이 더욱 강력했다고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모세의 이러한 고백은, 백성들의 어떠한 말에도 흔들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이 광야생활 일년이 지나고 고백한 말이라면 광야생활은 계속해서 39년이 더 이어지게 됩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신명기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죽음을 앞둔 모세의 마지막 설교가 나오게 됩니다.
신명기 33장 27절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임종을 앞둔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모세의 안아주심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광야생활을 1년 후나 40년 후나 모세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셨고 넓은 아름으로 품어 주시는 따뜻한 품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경험하고 고백했던 하나님께서 그 넓으신 아름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안으사, 여러분의 가정을 안으사, 우리 아름다운교회 공동체를 안으사, 오늘 이 자리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안으심의 손길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안으사 여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감격으로 마침표와 느낌표를 표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2018년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되는데요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며 찍어야 하는 바라봄의 쉼표, 소망의 물음표는 무엇일까요?
30절 말씀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3절입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말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가 한해의 마침표와 느낌표를, 안아주심이라고 표현했다면, 바라봄의 쉼표와 소망의 물음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보다 먼저 가시며 불과 구름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장 세우고 뒤따라 가면서 쫓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말씀처럼 언제나 그들보다 먼저 가시고 앞서 가시면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싸우시고 예비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사람은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떠아야 하는 사람중에 하나였습니다. 동서남북 방향을 알 수 없는 광야길에서 그들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 마라에서 쓴물을 만나게 되죠. 수르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을 합니다.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자, 나무를 던져라 지시하시고, 그대로 순종하니 물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이 달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나무를 던지자 물이 달아진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의 길 가운데, 문제는 있었습니다. 문제가 없는 길이 아니라, 분명히 문제는 있었죠. 그러나 그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게 될때 문제의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하나님은 언제나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그 다음에 그들의 눈에 엘림의 오아시스가 펼쳐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시나리오대로, 하나님의 각본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될 때 그들의 발걸음을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홍해바다로 인도하신 하나님! 마라의 쓴물로 인도하신 하나님! 엘림의 오아시스로 인도하신 하나님! 그분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르고 순종할 때, 엘림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참 영리한 것 같지만, 실상 우리는 한 시간 앞에 다가올 운명을 모르고 사는 무지한 인생입니다. 어디가야 좋은 초장이 있고, 어디를 가야 맑은 물가가 있고, 어디를 가면 흉악한 이리가 있고, 독사가 숨어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목자는 그들을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잘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밀하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바 되신 하나님!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믿고 따라가시는, 2018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합니다.
인디언 부족 가운데 ‘나바호’라고 하는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이 부족 사람들은 남자아이가 14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어른으로 인정해 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성인식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14세가 된 남자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깊은 계곡으로 들어갑니다. 들짐승도 있고 사나운 맹수도 나타나는 그런 깊은 산속에서 소년은 홀로 하룻밤을 지내야 합니다. 이제 한 소년이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호랑이인지 곰인지 모를 맹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더욱 가까이에서 들려왔습니다. 깊숙한 산속 한가운데 도착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두고 무심히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산속에 혼자 남겨진 소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당연히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유유히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 분노의 마음, 그리고 어떤 식으로 맹수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곳이기에,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냈을 것입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추위와 공포 속에서 아침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끝내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긴긴 밤을 뚫고 어느덧 동이 터 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시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밤을 지냈던 자리에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기척이 났습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어젯밤 무정하게 돌아가버린줄만 알았던 어버지가 그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동상이라도 된 듯 꼼짝도 않고 서서 활시위를 당겨둔 채 밤을 새웠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아들을 주시하며 혹시나 맹수를 공격을 받을까 걱정하며 활시위를 당겨둔 채 똑같이 아들을 아들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비록 우리를 안으신 손길이 눈에 보이지 않고, 먼저 가셔서 인도하시는 구름기둥 불기둥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은 지금도 활시위를 당겨둔채 우리를 주목하고 계심을 생각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