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에 대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과 어제와 오늘 말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씀의 무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시고 길의 공통점은 모두 사막과 광야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일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데,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고 하셨고, 어제 말씀에서도 광야와 사막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시며, 골짜기를 메우고, 언덕과 산을 깍아내고, 울퉁불한 길을 평탄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2절의 보시면, 다시 한번 광야와 사막이 언급된다는 것입니다. 1-2절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여러분, 광야라는 곳은, 기쁨이 있는 곳이 아니죠. 슬픔과 아픔과 고통의 상징이 광야인데,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막은 즐거움의 요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은 생명력이 없는 장소인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 한다는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2절은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광야와 사막은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장소이고,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삭막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광야와 사막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리며, 기뻐하는 곳으로, 즐거워하는 장소로, 아름다움을 누리를 처소로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여실 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은, 정해진 코스를 오르는 산행이 아니라, 수시로 변화하는 광야와 사막을 걷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찬 바람이 한번 몰아치면, 모래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생겨나기에,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이고, 수시로 지형이 바뀌기에, 지도가 소용없는 장소입니다. 또한, 광야와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에, 물을 구할 수 없는 곳이 광야와 사막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길을 알 수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심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걷게 하실 것이고, 물을 구할 수 없던 뜨거운 사막에 강을 내심으로, 생명력 있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2018년을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광야와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척박한 삶이, 예상된다고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고, 강을 여시는, 기쁨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현장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자, 이제 오늘 말씀의 본론은요,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부르는 이름과 호칭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내시는 길을 어떠한 이름으로 부르고, 어떤 호칭으로 부르면 좋을까?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얼마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한가지 있는데요. 여러분, 웨스트 밴쿠버에 길 이름을 지을 때, 바닷가부터 시작해서, 산쪽으로 올라오면서, 에비뉴의 이름을 abcd 알파벳 순서로 지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어떻게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요?
먼저, 8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거룩한 길이라 부릅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말씀을 계속 보시면, 광야와 사막에, 큰길, 대로가 열리는데, 그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가 된다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길은 거룩한 길이기에, 깨끗하지 못한 자는 갈 수 없고, 우매한 사람도 다닐수 없으며, 오직 어떤 사람만 통과하는 길입니까?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해 있는 길입니다.
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성품과 특징이 거룩한 분이시기에, 그 길을 가는 자도, 구속함을 받는 거룩한 자만 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차례 강조하셨던 표현이 무엇입니까?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언약을 이야기하는 출애굽기와 레위기 말씀에 당골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거룩한 길이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거룩하고 또 거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룩이라는 말의 히브리어로 카도쉬라고 하는데요. 그 의미와 뜻이 <잘라내다 구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것이나 손에 잡히는대로 마구마구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선한 분별력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만 구별하고,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잘라 버리는 것이 거룩의 의미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의 조건을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큰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는데,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습니다. 용도에 따라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죠. 이중에서 주인에게 합당한 그릇은 어떤 그릇입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러분, 거룩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슴에 달아야 하는 명찰임을 기억하며, 거룩과 성결함으로 준비되어, 하나님의 내시는 거룩한 길을 힘있게 걸어가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부르는 이름은, 거룩한 길일 뿐만 아니라, 안전한 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9절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하나님의 여시는 길의 특징은,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가 없고, 사납게 물어 뜯는 짐승이 올라오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는 안전한 길이라고 소개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을 때, 다니엘은 두가지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자신의 시기하는 자들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드는 거룩한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잠시 신앙을 포기하고 자신이 몸을 보호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니엘이 선택한 길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길이 아니라, 목숨을 포기하는 거룩한 길을 선택했고. 이로 인해서 사자굴이 던져지게 되는데요.
사자굴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심으로, 머러털하나 상하지 않게 하셨고, 오히려 다니엘의 이름을 높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자신의 유익이 아닌, 거룩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마칠 때까지 안전으로, 철두철미하게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2018년도 하나님께서 연초부터 연말까지 은택의 관을 씌워져서서, 안전한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부르는 이름이 또 한가지가 있는데요. 10절을 보시면, 그 길은 기쁨의 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0절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걷게 되면, 그 길을 가는 동안 맛보게 되는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속량함을 받고, 그 길을 가게 되면,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영영한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광경을 보기에, 기뻐하고 즐거하고 희락을 느끼는 것인가? 5절로 올라가 보시면, <그때에 그때에라는 말을 반복하며,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걷게 되면,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는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여러분, 어떻습니까? 기쁨의 함성을 외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내용들이 절대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사건들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도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인데, 하나님께서 여시는 길을 가는 동안 성취됨을 보면,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