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Shore ArumDawn Church |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 6 (신년이른비새벽기도회 다섯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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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내시는 길 6 (신년이른비새벽기도회 다섯째날)

오늘은 이번 한주간 진행되었던, 이른비 새벽기도회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일년을 시작하며, 함께 드린 새벽기도의 시간이, 우리의 삶에 현장에 이른비가 되게 하셔서,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것들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한해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한국에서는 특별새벽기도회 마지막 날이 되면, 떡잔치도 하거나 마지막까지 완주하신 분들에게, 메달을 선물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것이 없다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고, 하늘에게 받게 될 큰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은,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가 오늘 이 말씀을 살펴보기 위해, 이번 한주간 말씀을 나누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신 이유도, 오늘 말씀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바른 길을 선택하는, 출발점도 중요하고, 피곤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며,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 끝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일들을 보아야 하고, 이루어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내시는 길의 결론과 목적이고, 우리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신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년의 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신 이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말씀과, 에스겔 47장의 환상이 서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스겔 47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에서 시작한 물줄기의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 성전에서 시작한 작은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러나가는데요. 에스겔이 일천척을 단위로 그 물줄기를 측량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발목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무릎까지, 그리고 허리까지, 그리고 헤엄칠만한 큰 강물이 되어서, 죽어 있는 바다 사해바다로 흘러가는 관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일반적으로 강물이 바다로 유입되면, 강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성전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죽어 있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자, 바다가 소성함을 입고, 깨끗한 물이 되고, 물고기가 살아가는 생명력 있는 바다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걷게 되면,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과 같이, 놀라운 변화의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흘러가야 하는 변화의 현장, 하나님이 내시는 길의 목적지와 결론은 어디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세 곳의 목적지와 결론지점을 이야기 하는데요.

가장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통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합니다.

1절<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호와의 영인, 성령으로 기름부으신 후에, 어디로 보내신다고 합니까?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현장으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그리고 전파하는 아름다운 소식은 구체적으로 어떤것인지 말해주는데요.ㅊ마음이 상한자는 고치는 말씀이 아름다운 소식이고,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는 말씀이 아름다운 소식이며,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말씀이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회복의 능력이고, 포로된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를 허락하는 권한이며, 갇힌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놓임을 받았다는 선포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내용을 함께 담고 있는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 마음이 상한 자들, 포로된 자들, 갇힌자들에게 흘러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높은 자리에 있는,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낮은 자리에 있는 어려움을 만난 사람들에게 나가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이땅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오르막길이 아니라, 내리막길 이었습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악한 영의 포로가 되어, 사망에 갇혀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낮고 낮은 인간의 자리에 성육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한 언약백성이라면, 현재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아름다운 소식이 필요한 자들에게 흘러가서,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을 선포해야 한 줄로 믿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에 활동한 선교사 가운데, 미국감리회에서 의료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던 스크랜튼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인 스크랜튼이 이화여대를 세운 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남편 스크랜턴은 서울 정동에 처음 자리를 잡고, 병원을 차린 후, 찾아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성안에 위치한 정동은, 양반들의 기와집이 많았을 뿐 아니라, 경희궁과 덕수궁같은 궁궐도 있었고,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각국의 영사관들이 있어서, 외국인들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더욱이 고종황제로부터 ‘시병원’이라는 이름까지 받았기에, 조선 사회에서 ‘나라님이 보호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크랜튼 선교사에게 정동이라는 곳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안전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동에서 병원을 시작하고, 2년 정도 후에 스크랜턴은 병원을 옮길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정동에 있던 병원을 시 외곽 여러곳으로 분산하여 정식병원은 아니더라도 약을 나누어 주며, 간단한 진료를 할 수 있는 시약소라도 세우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왜냐하면,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는 정동이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병원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궁궐과 양반저택, 외국 공사관이 즐비한 정동은 귀족들이 선호하는 곳이지, 가난하고 병든이들이 편안하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크랜턴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병원을 옮기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서대문 밖같에 있는 애오개 지금에 아현동에 시약소를 세웁니다. 그당시 애오개는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활인서가 있었고,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어려서 죽은 아이들을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라,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는 곳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동대문 안 낙산언덕에 세웁니다. 이곳은 갖바치와 백정, 무당들이 몰려 살던 산동네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남대문 안 상동언덕에 세웠습니다. 상동 언덕에는 하루종일 장사꾼들로 북적이는 곳이었고, 시장바닥에 걸인들과 품꾼들이 움막을 치고 살던 곳이었습니다. 스크랜턴은 이렇게 서대문과 남대문, 동대문 세곳에 집을 마련하고, 시약소 간판을 내걸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의술과 함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발전하여 오늘날의 아현감리교회, 상동감리교회, 동대문감리교회가 된 것입니다. 안전한 지대를 떠나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애오개 골짜기로, 낙산언덕으로, 상동언덕으로 옮기는 모습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걸어갔던 신실한 종의 발걸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저희교회의 이름이 아름다운교회 인데요.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성도는 아름다운 복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소식을, 낮은 자리에서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의 목적지와 현장은, 무너진 것을 세우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저희 교회의 2018년도 주제와 표어는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입니다. 작년 2017년,은 교회를 시작하며, 기초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 예수님으로 코너스톤, 모퉁이돌을 놓는 시간이었다면, 올해 2018년에는 우리 공동체의 모퉁이돌 되시는, 예수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가 함께 손잡고, 협력함으로 지어져 갈때, 오늘 말씀처럼, 황폐했던 것들은 다시 쌓여지고, 무너진 곳은 다시 일으켜지며, 대대로 무너졌던 것들이 다시 중수되는 은혜의 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에도, 사업장과 일터에도, 그리고 이 시대와 사회속에서, 황폐한 곳이 너무 많고, 무너진 현장이 너무 많이 보이는데요.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소식을 가지고, 무너진 현장으로 달라갈 때, 성전에 시작한 물줄기가, 죽어 있는 바다를 살렸던 것처럼,  우리가 이른 곳마다 소성함을 있고, 회복의 역사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이 이번 주일에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보시면, 하나님의 내시는 길의 목적지와 현장은, 예배하고 섬기는  장소로 가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6절 말씀에,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걷는 사람을 부르는 명칭이 있는데요.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하면서 여호와의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자사라 할 것이며, 말하며 봉사자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길을 가는 자를, 여호와의 제사장 이라고도 부르고,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부르는데요.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예배하고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서서, 예배로 이 둘을 연결하는 직분이 제사장 이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서, 섬김으로 연결하는 직분이 봉사자의 위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봉사하는 자리로 나아갈 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되고, 황페하고 무너진 것들이 세워지는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말씀을 마무리하며, 이번 2018년 한해 동안, 하나님의 내시는, 광야에 길과 사막의 강을, 힘있게 달려가시되, 그 길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되는 장소로, 무너진 곳을 수축하는 현장으로, 예배하고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언약백성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