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Shore ArumDawn Church |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 1 (신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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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내시는 길 1 (신년주일)

하나님이 내시는 길                            이사야 43:14-21

오늘은 2018년에 드리는, 첫 번째 주일예배 입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새해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인데요. 여기에 두가지를 덧붙여서 인사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복을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복을 감사하며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새해 복 많이 누리세요. 인사 했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복이 우리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서 나누어 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누리세요. 새해 복 많이 나누세요.

저희는 오늘 새해 첫 예배를 언약갱신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 언약갱신예배는 요한웨슬리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으로,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인 송구영신예배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매년 12월 31일마다 함께 모여 한해를 돌아보며 용서를 구하고 새해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는 예배를 드렸는데요. 한국에서 활동했던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언약갱신예배는 송구영신예배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동차 인슐런스를 일년마다 새롭게 갱신하며 새로운 스티커를 붙이는 것처럼, 함께 드리는 새해 첫 신년예배를 통해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언약갱신예배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언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사야서 43장 말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함께 봉독한 말씀은 14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이지만 먼저 43장이 시작하는, 1-2절의 말씀이 언약갱신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것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셨고 지명하여 불렀기에  두려워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는 구속하였고 너는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절  2절도 보시면, 우리가 새해를 시작하며 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까요?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여러분,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우리가 시작하는 새해가운데 물을 지나고 불을 통과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말씀은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때에라고 말하고,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라고 말하며 물과 불을 통과하는 어려움과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쉽게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모든 물과 불이 사라질 것이고 항상 꽃길만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야 물과 불을 만나서 고생하겠지만, 나는 하나님께 도와주셔서, 언제나 내 인생에는 하이웨이가 열릴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는 것이죠.

저도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마음이 있었기에 이제 목회의 길에, 꽃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부목사로 훈련 받으면서 물과 불을 수 없이 거쳤으니, 야~ 이제는 평탄한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했는데요. 어떻습니까? 더 깊은 물속을, 더 뜨거운 불속을, 걷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어떠셨습니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차원의 물이 다른 차원의 불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 믿음의 가정에도, 말씀대로 운영하는 사업장에도, 정직하게 세워가는 비지니스에도,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 가는 길에, 물이 있는 것, 불이 있는 것, 너무 어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전히 2018년에도, 물속에 꼬르륵 잠기는 어려움을 만날 것이고, 뜨거운 불 속에서 고생하는 시련을, 당연히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2018년 새해의 삶속에, 물과 불을 걷은 시간이, 없게 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물을 지날 때에도 함께 하시고, 불을 지날 때에도 함께 하시겠다.는 함께 하심의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물 가운데 지날 때는, 물이 침몰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불 가운데 지날 때는 불꽃이 사르지 못하도록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줄로 믿습니다.

자, 이제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저는 오늘 본문을, 방금 전에 보신 2절 말씀의 관점에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물가운데서도 함께 하시고, 불가운데서 함께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오늘 본문인 14-21절을 보시면, 물가운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불가운데 지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물을 통과하는 사람을 위해서, 여시는 길이 있고, 불을 만난 사람을 위해 내시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이 내시는 길>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한주간 동안, 신년 이른비 새벽기도회가 진행되는데요. 이번 이른비 새벽기도회의 주제도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시는 길>이주제입니다.

여러분, 2018년을 시작하며, 나가야 될 길을 알지 못한 채, 불안과 걱정과 초조함으로 시작하고, 여러개의 갈림길 가운데, 갈팡질팡하며 시작하시겠습니까?

한주간 동안, 이른비 새벽기도회로 통하여서,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어떤 길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길은 무엇인가? 함께 살펴보고, 그 길 위에 우리의 발걸음을 세우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평소, 새벽시간에, 자신이 없던 분들도, 이번 한주 만큼은, 알람을 일찍 맞추시고, 새벽을 깨우는, 도전의 시간이 되시면 좋겠구요. 요즘 새벽예배를 쉬시던 분들도, 다시 한번 결단하며 새벽제단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출근 때문에 다섯번이 부담되시는 분들은 세번만이라도, 아니 한번만이라고, 하루를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른비 새벽기도회를 계획하며, 눈이 많이 오거나,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는데요, 일기예보를 보니,다행히, 비는 조금 내리겠지만, 눈소식도 없고,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 함께 참석하셔서,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물가운데 내시는 길이 있고, 불가운데 여시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요. 이중에서, 물가운데 내시는 길은 어떤 길일까요?

15절과 16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먼저, 이 말씀은, 이사야 시대에서 본다면, 과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 바다와 큰 물은 홍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가장 놀랍고, 상상을 초월했던 사건을 뽑아 보라면, 출애굽한 백성들이, 모두 홍해 바다를 마른땅으로 건넜던 기적일 것입니다.

여러분, 저희들이야 말씀을 통해서, 홍해바다가 갈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홍해 바다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그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절망하고, 낙담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 심킬 것 같은 바다를 보면서, 또, 추격해 오고 있는, 바로의 군대를 보면서, <이제 우리는 끝이구나> 생각하며,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찰라였습니다.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길이기에, 탄탄대로가 열릴 줄 알았습니다. 담임목사를 시작하며, 꽃길이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저와 같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출애굽이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채 한달이 지나지도 않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 나갈 수 없는, 기가막힌 물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떻습니까? 살아가면서, 사면초과, 진퇴양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놓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고, 간절히 기도하며 진행한 일이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헌신했던 일인데, 눈을 들어 보니, 어떻습니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홍해 앞에 서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기가막힌 물 앞에 설게 될 때,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물을 만나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해 물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고 증명하시기 위해,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 내신 줄로 믿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자세하게 기록해 주고 있는데요. 출애굽기 14:19-22 <이스라엘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제가 밤새도록이라는 단어에 밑줄을 쳐 놓았는데요. 두번씩이나 밤새도록 이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밤이라는 시간은, 절망의 시간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입니다. 무엇인가 시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 깊은 밤시간에 쉬지 않고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이스라엘 진영에, 빛을 비추셔서, 밝게 하셨고, 밤새도록 동풍이 불게 하셔서, 바닷물을 벽과 같이 세우시고, 마른땅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을 만났을 때에도, 이와 같이 밤새도록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또한, 마른땅이라는 말에도 은혜가 되었는데요. 보통 바닷물이 빠지고 나면, 갯벌이 나오기에,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고, 걸음을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시는 바닷길은, 밤새도록 동풍으로 말리신 길이기에,  수백만명의 사람이 건너도, 끄떡없는 단단한 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걸었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자신들 양옆 좌우에 세워진 물로 만든 벽을 보면서, 아래에 펼쳐지는 뽀송뽀송하고 단단한 바닷길을 걸으며,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넘쳤을 것이고, 인간의 생각과 방법을 뛰어넘으신,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의 고백하며, 환희와 기쁨으로 그 길을 걷지 않았을까요?

제가 오늘 꽃길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요. 여러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길이 꽃길이겠습니까? 아니면, 무지막지한 물을 만났을지라도, 그 물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지름길을 걷는 길이 꽃길일까요?

중국에 알리바바라는, 그룹을 창업한 마윈이라는 회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IT 분야를 전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영어 강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알리바바를 창업하고, 15년만에 중국을 넘어서 세계를 집어 삼켰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마윈 회장이 스탠포드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은 ‘돈과 기술과 계획’ 이 세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돈이 없으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치열하게 고민해서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해결해야 했고, 기술이 없으니 능력 있는 기술자를 존경하고 우대했다는 것입니다. 또,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변화하는 시장에 아주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없다고, 우리의 길을 막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빈털털이 난민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가진 것이 없기에,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홍해바다와 같은 물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이 여시는 길을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과 눈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길,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한 길이, 물을 만난 우리 앞에 열리게 되고, 그 길을 걷는 2018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이 한가지 더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물과 불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물가운데 내시는 지름길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운데 내시는 길도 있다는 것이죠.

먼저, 18절을 보시면, 물가운데 길을 내었던, 홍해사건을 말한 다음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홍해 사건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말합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통과한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지만, 현재 이사야 시대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그들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과거의 일이고, 역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기억에 빠져 있지 말고, 옛날일에 묶여 있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19절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인데,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받고,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만에 돌아오는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한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 포로 70년은 불을 통과하는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국가를 잃어버리고, 바베론으로 끌려서, 학대와 억압을 받고, 소똥에 떡을 구워 먹으며 보냈던, 비참한 70년은 불을 통과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70년의 기한이 차고, 바벨론에서 다시 유다로 돌아오는 길도 불을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부터 예루살렘까지는 1500km가 넘는 먼 거리일 뿐만 아니라, 사막과 광야를 가로질어야지 고향으로 갈 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사막과 광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찬 바람이 한번 몰아치면, 모래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생겨나기도 하는 지형이기에, 길을 찾을 수 없고, 지도가 소용없는 장소입니다.  또한, 광야와 사막의 뜨거운 열기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에, 물을 구할 수 없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길을 알 수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실 것이고, 물을 구할 수 없는 뜨거운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을 맺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 광야의 길을 통과하여, 돌아오게 할 것이고, 불 같은 사막을 통과할 때, 택한 자들로 하여금 그 강물을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이들의 후손을 통해서 성취가 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2차 귀환팀을, 이끌었던 에스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에스라 8:21,31절을 보시겠습니다.

21절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31절 <첫째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어떻습니까? 광야에 길을 내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손, 사막에 강을 내겠다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손을 함께 하시자, 불을 통과하는 시간이었지만, 불꽃이 사르지 못하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차기 막히는 시간에 택시를 탄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제가 운전하고 다닐 때도, 한 시간 이상씩 막히는 상습 정체구간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한시간 후에 있는 약속에 늦게 생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며 약속에 늦겠다고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그 때 택시운전기사분이, 자신을 택시 운전만 20년 이상을 했다고 하면서, 막히는 길을 20분만이 끊어주겠다고 장담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럼 좀 부탁을 드린다고 하면서도, 속으로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갑자기 성글라스를 꺼내어서 쓰고는 출발을 했는데요. 골목길과 샛길과 고속도로와 간선도로를 이렇게 저렇게 연결하면서 가는데요. 정말 놀랍게 길과 길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태껏 제게 듣도 보지고 못했던 길이 연결되더니, 정확하게 20분만에 목적지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택시비 두득히 드리고 내렸는데요. 내리면서 계속 머리속으로, 아니 어떻게 이길이 그렇게 연결되지? 아니 어떻게 이길 다음에 저 길이 나오지 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길에 없던 것이 아니죠, 제가 길을 몰랐던 것입니다. 오목이나 둘 줄아는 제가, 아무리 바둑판을 뚫어지게 보아도, 길은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로바둑 선수의 눈으로 본다면, 금방, 전혀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시는 길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길이 보이지 않는 광야이고, 불속을 걷는 것 같은 사막이지만, 프로의 눈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길과 길을 연결하시고, 새로운 길을 만드시고, 장애물을 제거하시면,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놀라운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5장 8-9절 <이는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가 계획하는 길과 하나님이 내시는 길의 차이는 얼마입니까? 하늘과 땅 차이, 천지차이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땅이라면, 하나님 내시는 길은 하늘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은 어린 나이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면서, 모든 인생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그대로 자랐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의 부자집 아들로 귀여움을 받았을 것이고, 그 동네의 유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십대 시절에 꿈이 산산조작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에 노예로 팔리게 되면, 평생이 노예였던 시대였습니다. 상식적으로 풀려날 길이 없는 신분입니다. 그래서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오고, 다시 가족을 만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보디발의 집에서 형편이 조금 좋아지나 싶더니,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이번에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했던 그길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오히려 오르막길 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밑바닥을 걷는 물과 불을 통과하는 시간이, 축복으로 가는 길이었고,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이었으며, 애굽과 열방을 살리는 축복의 리더쉽을 발휘하는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팔레스타인에서 자란 요셉이 정상적인 코스로 애굽에 가서, 국가고시를 치고, 다른 수만명의 공무원들과 경쟁하여 총리대신까지 올라가려면, 아마 할아버지가 되어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현재 가고 있는 이 길이, 저 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새해에도 신묘막측하신 방법으로, 우리가 모르는 길,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길 들을 연결시키며,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줄로 믿습니다.